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녀 공학 (문단 편집) == 역사 ==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플라톤은 '집을 지키는 데 암수의 차이가 있느냐'고 비유하며, 남자건 여자건 지배자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정치를 위한 교양교육을 남녀 모두 받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고대와 중세에는 남녀공학이 현실화된 적은 없다. 남녀공학의 개념이 처음으로 구현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의 [[서유럽]]부터다. 당시 몇몇 [[개신교]] 단체는 소년소녀 모두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잉글랜드]] 북부지역과 [[스코틀랜드]], 남녀 어린이가 데임 스쿨에 다녔던 [[식민지]] 뉴잉글랜드([[미국]] 북동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의 프렌드회([[퀘이커]])는 교육의 보편화에 힘썼던 것처럼 남녀공학도 앞장서서 받아들였다. 퀘이커교도들이 영국의 식민지에 정착하면서 남녀학생들은 한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게 되었다. [[미국 독립전쟁]] 이후 교회를 대신하게 된 새로운 무상 공립[[초등학교]]는 거의 대부분이 남녀공학이었으며, 1900년에는 공립[[고등학교]]에서도 일반화되었다. [[오하이오주]] 오벌린의 [[오벌린 칼리지]]를 시초로 많은 사립대학들이 여학생을 받아들였고, 여러 주립 대학들도 이를 따랐다. 19세기 말 미국 대학의 70%가 남녀공학이었으며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남녀공학을 거부해왔던 많은 고등교육기관들이 남녀공학을 받아들였다. 현재는 [[동아시아]]와 [[인도]], [[이슬람]] 문화권을 제외하면 전 세계 대부분의 [[공립학교]]가 남녀공학이다. [[일본]]이나 [[대만]] 같은 나라는 남녀공학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심지어 일본의 경우에는, 100년 이상 넘은 전통을 가진 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것은 저출산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국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에서 남녀평등을 기치로 들었던 [[중국]] 역시, 역사적으로 남녀분리학교였던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녀공학이다. 한국은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단성학교만 존재하다가 1906년 W. R. 스미스 목사가 설립한 의명학교를 최초로 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 수가 증가하였다. 최초의 고등교육기관 즉 대학교로 남녀공학을 실시한 학교는 1925년에 통합으로 인하여 [[감리교신학대학교]]가 실시했으며, 국립 학교로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가 최초이며 본격적으로는 1980년대부터 개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